진품과 복제품, 겉모습 뒤 혹은 속의 모습들.
- 에세이 / 현대미술
- 2017. 11. 29.
문득 그런 생각을 한 번 했던 적이 있습니다. 만약 정밀 기술이 더 발전하여 화가의 그림을 그저 사진처럼 이미지로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지는 과정마저 완벽하게 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라는 생각이었는데요. 그저 눈으로 보기에 똑같은 복제가 아니라 그 과정마저 완벽하게 복제된 복제품과 원본에 대한 생각이었죠.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자면 파블로 피카소와 같은 대가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녹화 한 후 붓의 움직임을 비롯한 붓에 묻어나는 물감의 양마저 세밀한 단위로 분석하여 정밀 기술로 만들어진 로봇팔을 이용해 녹화된 피카소의 그림 그리는 과정과 완벽히 일치하는 과정으로 그림을 복제한다는 것인데요. 이렇게 과정마저 완벽하게 복제된 그림과 피카소의 원본 그림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생각은 붓질 하나하나에 작가의 혼이 실린다는 표현에 의문을 가지며 시작한 생각이었는데요. 복제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는 현재에 더 어울리는 예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진품과 복제품 사이에는 이처럼 절대로 흩트릴 수 없는 견고한 벽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작품을 감상하는 행위에서만큼은 진품과 복제품에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대가의 그림을 일반 용지에 프린트하여 거실에 걸어놓고 하는 감상과 미술관에서 진품을 바라보며 하는 감상, 이 두 감상의 방식 모두가 감상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인데요. 이와 같은 생각 속의 감상에 대한 모습은 현대라는 사회에서 더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감상이라는 것은 ‘작품을 눈으로 보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사실 현대의 미술에서 본다는 것은 더 이상 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죠.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을 활용한 앤디 워홀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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